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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편지 | 순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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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useonjae 작성일2013-07-23 09:36 조회8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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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화시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입관합니다. 곡하세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작위적이던 곡소리는 신음소리가 섞이더니 점차 통곡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부지 이래 가믄 어뜨캅니꺼.”
살아생전 유난히도 할아버지와 많이 싸우시던 큰 고모는 장례 내내 눈물을 훔치신다.
고성을 주고받던 모습에만 익숙하던 나에게는 사뭇 낯선 모습이다.

할아버지와 큰 고모의 싸움주제는 주로 술이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병이 술 때문이 아님을 굳게 믿으시던 할아버지와
그런 고집을 지독히도 보기 싫어하던 큰고모셨다.
어찌 보면 그 고집마저 닮아있었지만 말이다.

부녀간에 어찌 애뜻한 정일랑 없었겠느냐만은
한 번도 다정한 모습을 뵌 적이 없었기에 상상이 가질 않는다.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이고 표현에 서툰 옛날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좀 너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 인사에는 속마음이 나오나 보다.
가슴 속 깊이깊이 묻어두었던 사랑은 조금씩 그 얼굴을 비치더니
이제는 수십 년 쌓아 둔 마음을 한꺼번에 토해낸다.
그 동안 상처받아 서운했던 마음들은 어느 새 녹아 오장육부를 적시고
눈물로 화(化)했으니 그 눈물은 피보다 진한 것이리라.

눈물과 함께 비로소 감사함은 터져 나온다.
“아부지 제가 잘못했습니더.”
마음속에 품어왔던 원망은 어느 새 사라지고 감사함만이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때때로 깨닫는다.
그리고 때때로 그 깨달음이 너무 늦었음을 깨닫는다.



장례식장에 사촌여동생이 왔다.
근 2년만이다. 하나뿐인 친 사촌동생인데 말이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이지만 왠지 불편한 눈치다.
괜스레 옆에 가 따스하게 쳐다봐준다.
괜찮다고 눈으로 얘기하면서 말이다.

작은 아버지와 숙모는 따로 산지 꽤나 오래 되셨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한 것도 아닌, 이혼한 것도 아닌 상태라 해야겠다.
가정불화에다가 능력부족, 돈 문제까지 겹쳐있다.
게다가 돈 문제가 친척들과 얽혀져 있고, 이미 신뢰를 잃어 이래저래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그러다 보니 이 어린 녀석에게까지 불똥이 튀게 되어 그리 따스한 대접은 못 받는 듯 하다.
“많이 힘들지?”
따뜻한 말 한마디에 한참이나 웅크리고 있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나 보다.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어.
그 상처의 크기만이 다를 뿐이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상처를 어떻게 승화시키냐에 달려있어.
그건 더 나은 네가 되는 원동력이야.”
너무 어려운 얘기를 했나 싶었더니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녀석은 어린나이에 이미 부모를 책임지려 하고 있었다.
자신이 책임지지 못하면 부모 스스로는 일어서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
자신은 너무나 쉬운 듯, 당연한 듯, 어른이 된 듯 행동하고 있었지만 그 눈은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은 아직 아이라고, 아직 어리다고, 아직은 어리광을 더 부리고 싶다고.

“가끔 전화해.”
전화번호를 건네주며 눈을 바라본다.
억지 어른이었던 녀셕은 비로소 아이가 되어있다.
세상이 밉고 사람이 미워 어른이 되어야 겠다 결심했던 그 아이는
다시 사랑받고 싶고 이쁨받고 싶은 20살 여자아이로 돌아가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변해간다. 따스한 말 한마디에.



할머니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음에도 장례식장에 가보려 하지 않으신다.
생전에 정이 별로 없음이기도 하거니와 치매를 앓고 계셔서 경황이 없으시기도 하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으시더니 애기처럼 되어 가신다.

“애미야 이리 와 봐라.”
할머니는 거의 매분마다 가족들을 부르신다.
가보면 주로 손을 잡아 달라거나 일으켜 세워달라거나 하는 것들을 부탁하신다.
별로 부탁하실 것이 없어도 부르신다.
불안하시고 외로우신가 보다.

어머니는 처음 시집 왔을 때 할머니가 그렇게도 무서우셨단다.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고 한다.
다른 식구들에게는 너그럽게 대하시다가도 며느리인 자신에게만 그리 호되게 대하실때마다
참 많은 상처가 가슴속에 점점이 박혀 홧병이 되었단다.
그러고도 20년간 따스한 눈길을 못 느끼셨단다.

너무나 사랑하던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긴 상실감을 어찌할 수가 없으셨나 보다.
그렇게 밉던 시어머니가 이제는 애기처럼 되어서
자신을 부를 때마다 어머니의 느낌도 남다를 것 같다.
가끔씩 어머니는 할머니께 이렇게 묻는다.

“어무이, 그때 나 혼냈는 거 기억나는교?”
할머니는 갑자기 어색하게 무표정해져서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가슴 속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간다.

“다 내 업보다. 업보를 닦을 수 있는 기회니까 고마운 일 아니겠나.”
어찌 고맙기만 할텐가.
가슴을 치고 통곡한 세월이 어디 하루 이틀이겠는가.
원망하고 원망하다 가슴이 문드러져
이제는 그만하자 포기하자 했던 수 많은 세월이 뇌리를 스쳐가실 게다.

하지만 더 기억해 무엇하리. 모두 다 내 탓이다. 모두 다 내 업보다.
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원인없는 결과가 있을손가. 모두 다 내 탓이다.

어머니는 그 동안 쌓인 울화를 삼키고 녹이고 울어내고 또 다시 삼키어
그 속에서 사랑을 증류해 내신다.
할머니의 마음도 사랑이었음을. 모두 다 사랑임을 알아내신다.
또 다시 할머니는 어머니를 부르신다.

“애미야 내 손 좀 잡아도고”
“어무이, 왜 진작 안 그러셨습니꺼.”
어머니는 따스한 눈길로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의 눈빛도 더 없이 자애롭다.
사람들은 때때로 깨닫는다. 모두 다 사랑임을.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저마다 대처하는 방법은 다르다.
많은 이들은 마음의 상처만큼이나 다른 이들을 미워하고 자신을 미워하지만,
어떤 이들은 마음에 생긴 상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 ‘상처’ 라는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것은 사랑이 되고 감사가 되어 세상을 뒤덮는다.
그것이 세상을 덮는 힘은 상상이상으로 대단해서 주변의 몇 명을 덮는가 싶더니
어느 새 도시를 덮고 나라를 덮으며 천하를 덮는다.
그리고 그 힘은 돌고 돌아 나에게로 오니 어느새 세상은 순화(純化)되어간다.

오호라! 나는 이미 순화시대(純化時代)에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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